콘크리트는 강재, 석재, 목재 등과 함께 현대 건축물의 구조용 재료로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콘크리트의 정의와 세계 발달사, 우리나라의 시멘트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콘크리트의 정의
시멘트와 물만을 혼합한 것을 시멘트페이스트(cement paste: 시멘트 풀)라 하고, 시멘트페이스트에 잔골재를 혼합한 것을 모르타르(mortar)라 한다. 모르타르도 넓은 뜻으로는 콘크리트의 일종이다. 콘크리트는 시 멘트와 물 및 잔·굵은골재를 주원료로 하고, 경우에 따라 제성질을 개선할 목적으로 혼화재료를 넣어 비빈 것으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시멘트와 물의 수화반응에 의해 굳어지는 성질을 가진 것이다.
시멘트의 세계적인 발달사
시멘트(cement)란 소위 시멘팅 매트리얼(cementing material), 즉 교착재(膠着材) 혹은 결합재(結合材)의 총칭으로서, 각종 재료를 붙이는 역할을 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건설분야의 구조재료 면에서 시멘트라고 하면 수경성으로 콘크리트 제조에 이용되는 포틀랜드시멘 트를 의미하게 된다.
시멘트의 어원은 caeder(부순돌)에서 시작하여 caedimentum을 거쳐 cementum으로 변하여, 오늘날 영어의 cement, 독일어의 zement로 쓰 이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한동안 일본어 ‘セメント’에서 세멘트, 세 멘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현재는 ‘시멘트’로 통일하여 부르고 있 다.
또한, 현재의 시멘트를 포틀랜드(portland) 시멘트라고 하는데, 이는 건축용 석재료로 사용되었던 영국 남단부의 포틀랜드(Portland)섬의 석 회석인 포틀랜드 석재(portland stone)의 색깔이 시멘트의 색깔과 비슷 하다고 하여 1824년 조셉 애스프딘(Joseph Aapdin: 현대 시멘트의 효 시)에 의해 명명된 것이다.
우리나라 시멘트의 역사
우리나라의 시멘트 역사는 일본 강점기하에서 일본 시멘트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였다. 즉, 일본은 1872년 아시아 최초로 시멘트공장이 건설 되었고(1881년에는 오노다(小野田)시멘트 창립) 그 후 38년 뒤(1919년) 에는 한국에도 진출하여 시멘트공장을 건설하였는데, 주로 일본인의 자본 과 기술에 의한 것이었고, 전쟁 수행을 위한 물자조달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1919년 우리나라에 최초 시멘트공장이 건설된 이래 현재까지 이르는 우리나라 시멘트 산업은 날로 발전해 오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해방 이후 남한에서의 시멘트 산업은 연간 18만 톤의 삼척공장이 고작이었는 데, 그나마도 설비노후, 자재부족 등으로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한, 1950년도 한국전쟁(6.25사변)을 겪으면서 1953년경까지는 시멘트생 산이 불가능한 암흑기였는데, 전후 복구사업의 대부분을 외국산 시멘트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서 뒤돌아보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공장 아닐 수 없다.
1962년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이후 시멘트 산업은 비약적인 성 장을 계속하여 왔는데, 1997년도의 IMP구제 금융을 받게 되기 직전까지는 연간 6,175만 톤의 시멘트를 생산하여 중국, 인도,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5위의 시멘트 생산국이 되었다. 그러나 1998년도에는 외환위기에 따라 건설경기가 위축되어 4,461만 톤으로 급감한 이래 조금씩 회복세를 보여 2003년도 5,830만 톤까지 상승하다가 그 후 다시 하락하여 2005 년도에는 4,628만 톤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국내의 시멘트 각사는 주변여건, 경제사정 등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므로 시멘트 산업에 종 사하는 담당자는 시멘트 과잉공급에 따른 문제점이 점점 더 심각해짐에 따라 시멘트 산업의 활로를 새롭게 모색해야만 하는 중요한 단계에 놓여 있다.
마치며
지금까지 콘크리트의 정의와 세계 발달사, 우리나라의 시멘트 역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보았습니다.